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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국가 앞에 당당히 선 ‘일베의 청년들’

‘일베 논문’을 쓴 연구자와 데이터 기반 컨설팅 업체의 도움을 받아 일베의 모습을 입체 조명했다. 두드러진 일베 코드는 ‘무임승차’와 ‘아버지’였다. 요란하고 반사회적인 표현 양식은 사이트 특성에서 비롯됐다.
천관율 기자  |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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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7호] 승인 2014.09.29  08:26:50
장면 하나. 9월6일 토요일, 서울 광화문광장 세월호 단식농성장 앞에 인터넷 커뮤니티 ‘일간 베스트 저장소(일베)’ 회원들이 대거 모였다. 이곳에서 이들은 세월호 유가족의 단식을 조롱하는 ‘폭식투쟁’을 하고, ‘일베 인증’ 손동작(손가락으로 ‘ㅇㅂ’을 그린다)을 하며 애국가를 불렀다. 일베 회원들은 이날을 ‘906 광화문대첩’이라 부르며 자축했다.

이날 그들이 보여준 것은 루저 감수성이 아니었다. 그날의 정서는 분명 자부심과 흥분이었다. 일베 사이트는 광화문대첩의 무용담으로 도배가 되다시피 했다.

장면 둘.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은 일베를 두고 페이스북에 연일 곤혹스러운 마음을 토로했다. 9월12일에는 “투쟁 방식을 상식적이고 건전한 방식으로 바꾸십시오. 그러면 저도 함께하겠습니다”라고 썼다. 일베가 보여주는 형식과 내용을 갈라치기하고, 형식의 극단성을 분리수거하면서 내용을 살려가자는 의미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김동인</font></div>9월13일 ‘세월호 특별법 반대 집회’에서 한 참가자가  여성의 나체 사진을 스마트폰에 띄운 채 춤을 추고 있다. 그가 들고 있는 인형은 일베 마스코트 ‘베츙’이다.  
ⓒ시사IN 김동인
9월13일 ‘세월호 특별법 반대 집회’에서 한 참가자가 여성의 나체 사진을 스마트폰에 띄운 채 춤을 추고 있다. 그가 들고 있는 인형은 일베 마스코트 ‘베츙’이다.

장면 셋. 올해 8월에 서울대 사회학과에서 일베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은 김학준씨는 연구를 위해 일베 회원들과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는 인터뷰를 할 때마다 깊은 인상을 받았다. “첫째로 굉장히 착하다. ‘키보드 워리어’라서 현실에서 주눅이 든 것도 아니고, 할 말 다 하면서도 아주 예의 바른 청년들이 줄줄이 나오더라. 둘째로, 다들 아버지 이야기를 많이 한다. 10대 때부터 아버지를 존경하고 영향을 받은 이야기가 많다. 전반적으로 삶의 태도가 참 순응적이다.”

소수자 혐오, 정의, 자부심, 내용과 형식의 괴리, 그리고 순응주의. 일베를 설명하는 키워드를 한데 모아놓고 보면 종잡을 수가 없다. <시사IN>은 일베 연구자 김학준씨와 데이터 기반 전략컨설팅 회사 트리움의 도움을 받아, 그동안  단편적으로만 알려졌던 일베의 모습을 입체 조명했다.

첫 번째 질문은 여론에 충격을 준 ‘광화문대첩’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다. 루저·지질이로 간주되던 이들은 어떻게 해서 이토록 강력한 자부심을 보여줄 수 있었을까.

 무임승차론 앞세운 ‘일베식 정의 구현’

가장 먼저 깨져나가는 통념이 있다. 일베가 소수자에 대한 혐오 발언만 넘쳐나는, 맥락도 일관성도 없는 쓰레기통이라는 통념이다. 분석 결과 일베는 나름의 예측 가능한 논리 체계와 정의 관념을 갖추고 있었다. 우선은 그들이 공유하는 전제를 받아들이고 논리를 따라가보자.

아래 <그림 1>은 일베 이용자들이 공유하는 논리 체계를 도식으로 나타낸 것이다. 한 축에는 일베의 ‘주적들’이 있다. 크게 보아 셋이다. 여성, 진보·개혁 진영, 그리고 호남이다. 한국 사회에서 소수파로 분류할 수 있는 이들이다.

   
 

일베가 보기에, 여성·진보·호남이 공유하는 특징은 ‘권리와 의무의 불일치’다. 의무는 다하지 않고 권리는 과도하게 요구한다. 여성은 데이트 비용을 내지 않고 남자를 등쳐먹고, 진보는 제 능력으로 성공하는 대신 국가에 떼를 쓰고, 호남은 자기들끼리만 뭉쳐서 뒤통수를 친다. 결이 다르기는 하지만, 북한도 남한의 지원은 받아먹고 남한에 대한 의무는 다하지 않는 존재다. 이들은 모두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성공해온 역사에 기여한 바가 별로 없다는 공통점이 있다. 일베의 눈에 이들은 2등 시민이다.

국가 건설의 주역은 남성·산업화세력·영남이고, 그렇기 때문에 이들이 대한민국의 주류가 되었다. 즉, ‘기여한 만큼 받았다’. 그런데 여성·진보·호남이 비주류의 권리를 내세워, 기여한 것보다 더 큰 보상을 요구한다.

이를 위해 여성·진보·호남이 동원하는 전략이 ‘이중잣대’와 ‘떼쓰기’다. 소수파를 비합리적 세력으로 낙인찍는 일베의 무기다. 일베는 “자기들이 하는 박근혜 조롱은 풍자이고 우리가 하는 노무현 조롱은 패륜인가?”라고 되묻는다. “능력만 있다면 살 만한 사회인 대한민국”에서 집회·시위는 능력 없는 이들의 떼쓰기로 간주된다.

여성과 진보와 호남은 떼를 써서 과도한 보상을 받는 세력이다. 이제 2등 시민이 특권층으로 변신했다. 의무 없이 권리를 챙기는 ‘무임승차’다. 반면 병역과 납세 의무를 다하고 성실하게 체제의 요구를 따르는 1등 시민은, 돌연 부당하게 권리를 빼앗긴 희생자가 되었다.

일베의 사고체계에서, 자신들의 혐오와 조롱은 소수자 혐오가 아니라 무임승차 혐오다. 사회 전체에 해를 끼치는 무임승차를 징벌한다는 ‘강력한 당위’를 공유한다. 이는 일베 이용자들이 사회의 지탄에도 아랑곳 않고 광화문광장에 나설 수 있는 동력이 되었다.

구체적인 사례로 확인해보자. 세월호 유가족은 일베가 공격하기 쉬운 대상이 아니다. 이들이 가족을 잃는 과정을 전 국민이 생중계로 지켜봤다. 어마어마한 감정이입과 공감의 에너지가 있다. 하지만 일베는 세월호 유가족을 상대로도 전선 뒤집기를 시도한다.

그러려면 먼저 ‘특권’, 즉 과도한 보상이라 딱지 붙일 거리가 필요하다. 유가족의 의사와 상관없이, 일베는 대학 특례입학과 보상금 문제를 집요하게 제기한다. 이제 공격할 과녁인 ‘특권’이 생겼다. 이 구도에서 유가족은 ‘교통사고를 가지고 대한민국의 발목을 잡는 무임승차자’가 된다.

비교 대상으로 일베는 천안함 유가족을 불러낸다. 이들이야말로 ‘자격이 있는 희생자’이면서도 세월호 유가족보다 훨씬 적은 보상을 받은 피해자다. 군인 보상체계와 민간인 보상체계가 다르다는 사실만 무시하면(보통은 이런 중요한 차이를 무시하면 안 된다) ‘세월호 유가족의 무임승차’와 ‘천안함 유가족의 희생’이라는 스토리가 완성된다.

일베에게 이 구도는 이미 익숙하다. 일베가 끈질기게 공격 대상으로 삼는 5·18을 다루는 방식이 정확히 이렇다. 일베는 5·18 희생자 유가족이 ‘국가 보상으로 호의호식한다’고 주장하면서, 반대편에 ‘폐지를 줍는 한국전쟁 희생자 유가족’을 배치했다. 이제 5·18 유가족도 무임승차 딱지가 붙는다. ‘일베식 정의 구현’의 핵심은, 소수자가 국가로부터 받는 보호를 집요하게 파고들어 이들을 무임승차자로 낙인찍는 과정이다. 무임승차자라는 규정이 일단 한번 먹혀들면, 이는 일베의 영향력을 넘어서는 강력한 힘을 갖게 된다.

 일베 코드가 보수를 유혹하는 이유

금융권에서 일하다 퇴직한 50대 남성 최 아무개씨는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를, 2012년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를 찍었다. 인터넷에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는 그는 일베를 들어가본 적도 없다. 하지만 그는 세월호 유가족이 화제에 오르면 정확히 일베와 같은 반응을 보인다. “특례입학이며 보상금이며 하는 건 좀 과한 거 아닌가? 단식하는 유민 아빠라는 그 사람은 이혼하고 양육비도 제대로 안 줬다더만.” 평범한 장년층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다. 여기에 깔려 있는 핵심 코드는 자격 없는 이들이 받는 과도한 보상, 즉 무임승차 코드다.

일베에 들어가본 적도 없는 50대 중도층에까지 일베 논리가 침투했다고 해석한다면 영향력을 한참 과대평가하는 꼴이다. 그보다는 무임승차 혐오라는 코드가 일베와 상관없이 폭넓은 공감대를 얻는 힘이 있다는 해석이 더 설득력 있어 보인다. 중도층으로서는 감정 소모가 꽤 큰 세월호 감정이입에서 벗어나고 싶던 차에 마침맞은 탈출구이기도 했을 것이다.

팀별 과제에 기여는 하지 않고 학점은 똑같이 받겠다는 대학생, 유리지갑 월급쟁이를 비웃는 고소득 전문직 탈세자, 자기 경조사는 악착같이 알리다가 남의 경조사는 외면하는 친구, 부하 직원의 기획안에 제 이름을 써서 올리는 상사…. 사람은 무임승차를 보면 자기 일이 아니더라도 화를 낸다.

한국에서만 먹히는 정서도 아니다. 1976년 미국 공화당 대선 경선에서, 4년 후에 대통령이 되는 로널드 레이건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무임승차 스토리를 들고 나온다. 가짜 신원 수십 개를 만들어 복지 혜택을 싹쓸이해 캐딜락을 타고 다닌다는 한 흑인 여성을 레이건은 ‘복지 여왕’이라 야유했다.

복지 여왕의 무임승차 스토리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감세 공약은 레이건을 재선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 기여했다. 훗날 복지 여왕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인물로 확인됐다. 레이건은 얄궂게도 이 복지 여왕을 ‘흑인’ ‘여성’으로 설정해, 소수자에 무임승차 낙인을 찍는 일베 특유의 기술을 40여 년 전에 보여주었다.

무임승차 혐오 코드가 세계 어디서나 강력한 이유는 인간 본연의 도덕 감정과 정의감에 기반한 분노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사회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는 책 <바른 마음>에서, “무임승차자로부터 공동체를 지키려는 강력한 소망”은 인간의 본능이라고 주장했다.

하이트가 보기에 무임승차 징계는 공동체의 생존과 직결된다. 무임승차를 방치하면 공동체를 위해 협력하는 사람이 줄어들어 사회 구조가 위태로워진다(무임승차자 한두 명이 생기면 억울한 마음에 다들 손을 놓아버리는 팀별 과제처럼). 그래서 우리는 자신이 피해를 볼 때뿐만 아니라 별 상관이 없는 경우에도, 무임승차를 보면 분노를 느끼도록 진화했다는 것이 하이트의 주장이다. 무임승차 혐오는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정의로운 분노’인 셈이다.

사회의 보호를 받는 약자는 손쉽게 무임승차자로 간주되곤 한다. 이때 보수는 “기여한 만큼 받아야 한다”라며 무임승차 징계 의지를 드러내는 경향이 있다. 반면 진보는 약자에 감정이입하면서 무임승차가 아니라는 태도를 보인다. 둘 다 인간 본연의 도덕 감정이다.

일베에서 출발한 논의가 무임승차 혐오 코드를 거쳐서, 도덕·정의·공평이라는 도저히 어울릴 것 같지 않던 키워드에 도착했다. 일베가 진정 위력을 발휘하는 장면은, “기여한 만큼 받아야 한다” “무임승차를 징계해야 사회가 유지된다”라는 보수적이지만 다수가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도덕 감정을 정확히 건드릴 때다(‘무임승차’를 보는 보수의 눈 기사 참조).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은 일베의 반사회적인 표현 형식과 나름의 일관성을 갖춘 논리 체계를 분리수거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전자가 갖는 위험성을 두려워하면서도 후자에 매력을 느꼈다. 일베는 무임승차 혐오라는 매력적인 무기를 쉴 틈 없이 생산해내는 아까운 군수공장이다.

하지만 이런 ‘분리수거 기획’이 일베를 구원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이유를 알려면 다음 수수께끼를 풀어야 한다. 왜 일베 이용자들은 그리도 요란하고 반사회적인 표현 양식을 선택해서 나름 중도층에 어필할 만한 내용조차 갉아먹을까.

 폭발적 진화 메커니즘이 일베의 뿌리

일베를 연구한 석사논문의 저자 김학준은 그 자신이 ‘인터넷 죽돌이’ 출신이다. 디시인사이드가 그의 ‘본진’이었고, 일베 역시 일반에 주목받기 한참 전부터 들락거렸다.

김학준은 2011년 6월부터 2014년 2월까지의 ‘일간베스트 게시물’ 33만 개와 ‘정치게시판 일간베스트’ 10만 개를 수집해 분석했다. 실제 일베 이용자 10명을 상대로 A4 300장 분량의 심층 인터뷰도 병행했다. 그는 일베 회원들과의 인터뷰에서 ‘일베 방언’을 자유자재로 구사해 긴장감을 누그러뜨렸다.

   
 

그가 보는 일베는 첫째, 인터넷 유머 사이트다. 이것은 일베가 인터넷 하위문화의 전통적인 유머 코드를 승계하고 있다는 뜻이다. 둘째, 일베는 큰 사이트다. 동시 접속자가 2만명을 넘나드는 초대형 커뮤니티다. 셋째, 일베의 시스템은 경쟁 압력이 아주 크다. 짧은 시간에 추천을 많이 받아야 일간베스트 게시물이 되고, 활동량과 일간베스트 게시물이 많으면 레벨이 올라가는 구조다.

이 세 가지 특징이 조합되면 그야말로 폭발적인 결과가 나온다(위 <그림 2>). 먼저 인터넷 하위문화의 전통적인 유머 코드인 이른바 ‘지역 드립’이 일베에서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진화’한다. 일베는 ‘7시 멀티’(시계 방향에 빗대 호남을 이르는 말), ‘여권’ ‘비자’(광주 여행자에게 외국 입국이나 다름없다며), ‘홍밍아웃’(호남 출신임을 고백하는 것), ‘홍들홍들’(조롱당하고 분노하는 호남 사람) 따위 ‘지역 드립’을 끝도 없이 쏟아낸다.

‘노알라’는 원래 노무현 대통령을 신처럼 신봉한다며 조롱하던 말이었다(노무현+알라). 이 말이 노 전 대통령 얼굴을 코알라에 합성한 이미지로 ‘진화’하고, 이는 다시 노 전 대통령의 생전 육성을 섞어 만든 리믹스 곡 만들기 경쟁으로 이어졌다. ‘노무현이라는 놀이 코드를 누가 더 재미있게 갖고 노는가’라는 게임에 뛰어든 경쟁자들은 서로가 서로를 극단까지 밀어붙였다.

인터뷰 과정에서 김학준이 일베 이용자들에게 노알라 합성사진을 거론하며 어떤 느낌이 드는지 물었을 때, 대다수는 “그냥 웃기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들에게는 무엇보다 개그 코드다. “노잼(재미가 없다)”이라는 반응은 있었지만 노무현에 대한 증오를 드러낸 사람은 없었다. 그 이미지가 일베 밖의 대중에게 얼마나 혐오스럽게 비치는지에 대한 감각도 거의 없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인터네 커무니티 갈무리</font></div>노무현 전 대통령과 코알라를 합성한 이미지(위)는 대표적 일베 코드다. 여러 일베 이용자들은 이 이미지에 대해 유머라고 반응했다.  
ⓒ인터네 커무니티 갈무리
노무현 전 대통령과 코알라를 합성한 이미지(위)는 대표적 일베 코드다. 여러 일베 이용자들은 이 이미지에 대해 유머라고 반응했다.

일간베스트 게시물이 되려면 더 새롭고, 자극적이고, 의표를 찔러야 한다. 그러다 보면 위험한 외줄타기를 벌이는 사용자도 나온다. 아기가 쓰는 젖병 공장에서 “여자 젖이 그리우면 빤다”라며 ‘일베 인증’을 한다거나, 심지어 5·18 희생자의 관 사진을 올리고 ‘홍어 택배’라며 낄낄댄다. 폭발적인 경쟁이 낳은 극단적 결과물이 돌연 현실 세계와 만날 때, 현실은 그 패륜과 반사회성에 아연실색한다. 반대로 일베는 현실 세계의 반응에 어리둥절해한다. 일베의 눈으로 보면, 현실 세계는 유머 사이트 일베의 정체성인 ‘드립 문화’를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남의 놀이판에 끼어들어 훈수를 둔다. 일베 용어로 ‘씹선비’다.

유머 사이트, 유입 인구, 경쟁 압력이라는 삼박자가 갖춰지는 순간 폭발적인 진화가 일어났다. 표현의 반사회성과 극단성은 일베의 구조에 내재한 속성에 가깝다. 보수 일각의 기대처럼 그것만 따로 걷어낼 방법은 사실상 없다.

일베의 진화 메커니즘은 유머 코드만 극단으로 밀어붙인 것이 아니다. 무임승차 혐오라는 날카로운 칼도 결국은 이 폭발적 진화 메커니즘이 극한까지 벼려냈다. ‘진지 빨고 쓴 글’이 일간베스트 게시물이 되려면, 보수와 중도가 공유하는 무임승차 혐오를 간결하고도 정확하게 자극해야 한다. 경쟁은 무임승차 혐오의 ‘명중률’을 끊임없이 끌어올린다.

폭발적 진화 메커니즘이 없다면 일베가 예전만큼의 담론 생산 능력을 보여줄 가능성은 높지 않다. 극단성(반사회적 표현)과 전형성(보수 본연의 도덕 감정). 이것은 일베의 두 얼굴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한 뿌리에서 나온 쌍둥이다.

9월13일자 한 일간베스트 게시물에서는 일베의 표현 양식이 대중에게 혐오감을 준다는 문제로 논쟁이 붙었다. 한 댓글은 일베의 딜레마를 일베의 언어로 표현해냈다. “진짜로 일베가 클린클리닐베가 돼서 보수층들 쌓이면 막강한데 클린해지면 노잼에 발전 불가.”

 “권위주의 산업화의 아들이 돌아왔다”

지금까지 우리는 일베 사고체계 최초의 가정, ‘소수자를 특권층으로 뒤집는 가치 전도’를 일단 그렇다 치고 논의를 끌어왔다. 그 가정을 받아들였을 때 일베가 어떤 논리를 따라 현재의 모습이 되었는지를 재구성했다. 이제는 마지막 수수께끼를 풀 차례다. 일베의 청년들은 왜 소수자를 특권층으로 뒤집는 가치 전도를 거리낌 없이 받아들였을까. 이들은 왜 소수자에 감정이입하는 길 대신 혐오를 택했을까. 트리움의 도움을 받아 일베 이용자 담론 지도(아래 <그림 3>)를 그려보았다.

   
 

“‘아버지-서울’ 축이 압도적이네요.” 트리움 김도훈 대표의 말이다. 담론 지도는 ‘아버지-서울’ 축이 경부고속도로처럼 중심축을 이뤘다. “이 친구들한테 재밌는 게, 아버지의 삶을 거의 그대로 내면화합니다. 젊은 때는 아버지와 같은 권위에는 반항도 하기 마련인데 그런 게 없어요.” 그럼 서울은 뭘까? “상세 분석을 보면, 경상도에서(담론 지도에서는 '대구') 어렵게 자란 아버지가 서울에 올라와서 나름 자리를 잡습니다. 인터뷰를 한 친구들이 그 서사를 자랑스러워하고 닮고 싶어해요.”

좋은(‘김치녀’가 아닌) ‘여자친구’를 만나 ‘서울’에 자리 잡고 ‘가족’을 이루는 꿈. 인터뷰를 한 일베 이용자들 대부분이 바라는 미래상이었다. 인터넷에서는 극단적 여성 혐오를 쏟아내고 세월호 유가족 앞에서는 폭식투쟁을 하던 그 일베가 맞나 싶은 평범함. 김학준은 논문에서 “평범함이 유토피아가 되는 시대”라는 표현을 썼다. 아버지 세대의 ‘평범한 성공 서사’가 이제는 특별해져버린 시대에, 인터뷰에 나섰던 일베 이용자들은 ‘평범함’을 쟁취하려 발버둥친다. 고통스럽다고 도와달라고 외칠 수는 없다. 그건 무임승차다.

“센 놈에 붙어라.” 김도훈 대표가 다시 입을 열었다. “권위주의 산업화 시대의 한국 사회를 버텨내고 살아온 아버지라면, 아마도 몸으로 느낀 생존전략일 겁니다. 강자에 저항했다면 ‘힘들게 시작해서 서울에 자리 잡는’ 성공을 거둘 확률은 꽤 떨어졌겠죠. 아버지 세대가 체득한 생존전략을 아들이 저항 없이 받아들이고 있어요. 일베가 무엇인지 정의하라고 한다면 제 가설은 그겁니다. 권위주의 산업화 시대 생존자의 아들이 아버지를 고스란히 물려받아 돌아왔습니다.”

‘센 놈에 붙어라’ 전략에서 소수자에 손을 내밀고 연대하는 것은 금기다. ‘국가-아버지’에 대한 순응은 소수자 혐오의 동력이 된다. 김 대표의 가설이 옳다면, 소수자 혐오가 먼저다. 무임승차 혐오는 정당화를 위해 뒤늦게 덧붙는다.

이렇게 해서 일베는 지독한 ‘구조맹’이 된다. 여성의 유리천장도 호남의 지역차별도 일베의 눈에는 구조적 불리함이 아니라 개인의 노력 부족이 된다. 사회 구조 차원의 유불리를 인정하지 않으니, 소수자에게 주는 지원은 권리가 아니라 무임승차다. ‘구조맹’의 항의는 국가를 향하는 법이 없다. 김학준은 논문의 결론을 “일베 이용자는 근대 한국 체제가 가장 성공적으로 산출해낸 통치 대상이다”라고 내렸다. 국가는, 오직 국가만이 지나치게 성공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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