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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웃기엔 섬뜩한 ‘용감한 녀석들’

10월 첫째 주까지 진행된 원세훈·김용판 공판에서 국정원의 댓글 공작과 관련해 많은 사실이 드러났다. 지난해 서울경찰청은 국정원과 수시로 연락한 뒤 사실이 아닌 수사 결과를 발표해 상황을 ‘되치기’했다.
김은지 기자  |  smi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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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7호] 승인 2013.10.14  08:49:46
“업무가 되게 재미없었을 거 같지 않아? 게시글 올리고 자기가 또 자기 거에 댓글 달고 추천하고.” “오타쿠 기질이 있는 사람한테 최고. 대외적으로 활동을 안 하고.”

2012년 12월16일 오전 10시26분. 서울경찰청 증거분석실에서 국가정보원 직원 김하영씨의 노트북에서 발견된 다수의 닉네임으로 인터넷을 조사하던 분석관이 나눈 말이다. CCTV에 고스란히 찍힌 이 대화는 12월16일 밤 서울청의 ‘댓글을 단 혐의를 발견할 수 없음’이라는 중간발표 내용이 틀렸다는 것뿐 아니라, 심리전단의 활동 전모를 짐작하게 한다.

재판을 통해 국정원 심리전단의 실체가 드러났다. 원세훈 원장 취임 이후 심리전단은 독립 부서로 편제된 다음 2개 팀으로 확대되고, 지방선거 이후인 2010년 3개 팀,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4개 팀으로 늘어나 1, 2, 3, 5팀(국정원은 숫자 4는 쓰지 않았다)에 70여 명이 활동했다. 댓글 사건의 장본인 김하영씨는 안보3팀 5파트에 속했다. 오늘의 유머·일간베스트저장소 등을 담당한 5파트 소속은 모두 5명이었다. 이 아무개 파트장, 김하영, 이◯◯, 윤◯◯, 황◯◯이다. 여기에 민간인 이정수씨(가명·무직)도 가담했다. 총선·대선을 앞두고 신설된 안보5팀은 트위터 등 SNS만 담당했다. SNS팀 신설 배경은 2011년 11월18일 전 부서장 회의 때 원 전 원장이 한 말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다. “서울시장 재·보선에서 여당 소속 나경원 후보가 트위터 등을 중심으로 1억원 피부숍 논란이 일면서 낙선했다. 혹세무민된 것을 정상화하는, 사이버상 잘못된 내용을 바로잡는 것이다.” 원 전 원장의 발언이 있고 석 달 뒤 SNS팀이 꾸려졌다.

반드시 지켜야 하는 업무 매뉴얼

김하영씨가 속한 심리전단의 하루 일과는 오전에 각자 국정원 안팎에서 업무를 보고 같은 파트원끼리 국정원 구내에서 점심을 먹은 다음 간략한 회의를 했다. 오후에는 다시 각자 국정원 밖으로 흩어져 글 게시·댓글 작성·찬반 클릭 등을 했다. 장소는 커피숍, 아파트 단지, 고시원 등 다양했지만 반드시 지켜야 하는 업무 매뉴얼이 있었다. 동일 장소 반복 이용 금지, 가급적 CCTV 감시 지역 피하기, 일주일 주기로 글 삭제 등이다. 김씨와 같은 파트원인 황◯◯씨는 검찰 조사 때 업무 매뉴얼은 원내 이메일을 통해 지시가 내려왔다고 진술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6월14일 서울중앙지검 이진한 2차장 검사(서 있는 이)가 ‘국정원 사건’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 차장 검사 왼쪽에 특별수사팀을 이끄는 윤석열 팀장이 앉았다.  
ⓒ연합뉴스
6월14일 서울중앙지검 이진한 2차장 검사(서 있는 이)가 ‘국정원 사건’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 차장 검사 왼쪽에 특별수사팀을 이끄는 윤석열 팀장이 앉았다.
온라인에 게재할 내용 또한 매일 시달되었다. ‘금일 이슈 및 논지’를 전달해주는 파트장의 지시에 따라 일부 각색했다. 김씨와 같은 5파트원인 이◯◯씨는 재판에서 “원장님 지시 사항이 있으면 최우선적으로 그 내용을 주로 (사이버 활동을) 하는 거다”라고 말했다. 활동은 매일 상부에 보고되었다. 파트장은 파트원이 작성한 글 제목 3~4건과 해당 사이트 정도를 쓴 목록을 3팀 1파트로 보냈다. 주요 카페의 특이 동향 보고서도 작성했다. 활동 모니터 보고서에도, 인터넷 커뮤니티에 “정준길이 ‘저 여자 죽인다’고 하면, 금태섭은 살인죄라고 할 거다” “나로호 이상이 발견되자 무리하게 발사 추진한 의혹이 있다고 정부 비방”이라는 글이 인기 있다는 식의, 북한·종북 대처와는 거리가 먼 보고를 하기도 했다. 이 파트장은 재판에서 “할 거리가 없을 때 입가심 삼아 넣었다”라고 설명했다. 검찰의 주장은 심리전단 산하 70여 명이 ‘국정원장-3차장-심리전단장-기획관-팀장-파트장-파트원’이라는 지휘계통을 통해 지시를 전달받고 김하영씨와 같은 활동을 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매달 1200~1600건 가까운 글을 작성해 국내 정치에 개입했다.

재판 과정에서 국정원의 조직적인 은폐도 확인되었다. 김하영 직원은 민간인 이정수씨를 알게 된 시점을 경찰에서 허위 진술했다. 이는 국정원 내부에도 보고되었다. 이 파트장은 “대공 수사를 해본 경력이 없는 권은희가 일을 맡았다. 안보 수사는 최대한 은밀하게 해야 하는데 실황 공개하듯 떠드니 ‘경찰은 아니다, 검찰에 가서 얘기하자’고 했다”라고 진술했다. 검찰 조사 중에 말을 바꾸기도 했다. 이 파트장은 “조사가 기소되는 방향으로 강도 높게 진행되자 부담을 느껴” 가급적 진솔하게 이야기한 1차 검찰 진술과 달리 2차에서는 진술하기 곤란하다며 말을 아끼기도 했다.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 재판 과정에서도 새로운 사실이 여럿 공개되었다. 지난해 12월11일부터 국정원 직원과 수사를 담당하는 경찰 사이에 접촉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사건 당일 저녁 이종명 당시 국정원 3차장과 김용판 서울경찰청장이 만났다. 이 전 차장은 2~3주 전에 미리 잡힌 약속이었다고 했다. 그날을 시작으로 14일 밤, 16일 오후 등 세 차례 통화를 했다고 김 전 청장은 증언했고 이는 통화기록에도 나온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이상규 의원실 제공</font></div>서울경찰청 CC TV 화면에는 국정원 댓글 공작 증거 찾기에 몰두하던 분석관들이 12월16일 밤 중간수사발표 전 갑자기 태도를 바꾸는 모습이 담겨 있다.  
ⓒ이상규 의원실 제공
서울경찰청 CC TV 화면에는 국정원 댓글 공작 증거 찾기에 몰두하던 분석관들이 12월16일 밤 중간수사발표 전 갑자기 태도를 바꾸는 모습이 담겨 있다.
이종명 전 차장 외에도 국정원 직원은 자주 경찰 수사 관계자들에게 연락했다. 통화 목록을 보면 이광석 당시 서울 수서경찰서장은 사건 발생 다음 날인 12월12일부터 경찰의 중간수사 결과 발표날인 16일까지 강남을 담당하는 국정원 직원 신 아무개씨와 10회 넘게 통화했다. 서울청을 담당하는 국정원 직원 안 아무개씨가 김하영 노트북 제출과 관련해 수서서 수사팀을 제치고 서울청 직원들과 미리 통화한 사실도 드러났다.

국정원 말만 믿은 서울경찰청의 촌극

또 검찰은 차문희 당시 국정원 2차장과 박원동 당시 국익정보국장의 통화 목록도 증거로 재판부에 제출했다. 박 전 국장은 김용판 전 서울청장과 통화하고 권영세 당시 박근혜 대선캠프 종합상황실장과도 통화한 기록이 있다. 차 전 차장은 서상기 당시 국회 정보위원장과 원세훈 전 원장과도 통화한 기록이 나온다. 피의자인 국정원과 일선 수사를 맡은 서울청 사이의 잦은 연락은 사건을 은폐하려는 수뇌부의 조직적인 움직임이 있었다는 의심을 살 만한 정황이다.

국정원과 경찰의 밀착에 따른 자신감을 반영한 것인지, 김하영은 187개 파일을 복구 불가능한 방식인 오버라이트로 삭제하고 경찰에 임의 제출했다. 최◯◯ 팀장, 민병주 심리전단장 등은 노트북 제출을 반대했다고 법정에서 털어놓았다. 결국 서울청에서는 위법 행위를 한 게 없다는 국정원 말만 믿고 CCTV를 켜놓은 채 노트북 등에 대한 증거 분석을 공개적으로 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좌파·우파’ 등 정치 관련 글이 나오자 당황했다. 그래서 녹화되는 걸 막아보려고 했지만 끌 수는 없었고 볼륨을 최대한 줄이려 했다. 그조차도 작동 미숙으로 오히려 볼륨을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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